야마구치 나쓰오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일본의 정치인. 공명당 대표이며 참의원 의원이다.
2. 생애[편집]
이바라키현 출신으로, 도쿄대학을 졸업한 뒤 1979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1989년 공명당에 입당하여 1990년 도쿄도 제10구에서 중의원이 된 뒤 1993년 재선한다. 하지만 1994년 공명당이 노선 갈등으로 찢어지면서 신진당에 참가하였다가 1996년 중의원 선거에서 도쿄도 제17구에 출마했으나 자유민주당 히라사와 가쓰에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당시 제1야당이었던[1] 신진당이 또다시 계파 갈등으로 박살나고(...) 찢어지자 1997년 신당평화라는 정당을 창당한 뒤 1998년에 공명당이 재결성되자 공명당으로 복귀하였다.
2001년 제19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도쿄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2007년 제21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였다. 2009년 오타 아키히로의 뒤를 이어 제3대 공명당 대표로 취임한다. 2013년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도 3선을 위해 출마하였고, 창가학회의 지지표를 얻어 무난히 2위로 3선에 성공하였다.
2010년대 아베 내각이 출범하면서 연립 여당의 대표가 되었지만, 아무래도 자민당보단 공명당 세가 적고 본인 성격도 유들유들한 편이라 그런지 아베 내각에 끌려 다닌다는 지적도 제법 받는 편이다. 선거에서도 연립 여당으로 자민당 논조에 공조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평화헌법 문제에서 굳이 개헌을 해야 되냐며 아베 내각과 결을 달리 하는 등 본인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도 생각보단 많은 편이다.
2020년 1월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 관련해 고이케 유리코를 개인 차원에서 지지했다. 아베 내각의 인기가 하락하면서 목소리를 점차 키우고 있는데, 8월 3일에는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 급증과 관련해 정부 차원에서 병상 확보와 함께 적극적 PCR 검사에 나서야 한다고 아베 총리에게 제안했다.#
9월 16일 열린 임시 국회 총리 지명 투표에서 새롭게 자민당 총재가 된 스가 요시히데를 지지했다.
9월 17일, 공명당 대표 경선에 단독 입후보하면서 내후년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2022년 9월 13일, 자신의 대표직 임기 만료로 인해 오는 9월 25일에 실시되는 당대회에서 출마를 선언했다.#
9월 15일, 당대회에서 아무도 후보자 접수를 하지 않아 대표 직을 연임하게 되었다.
12월 28일, 방한하여 윤석열 대통령과 만났다.#
3. 소속 정당[편집]
4. 선거 이력[편집]
5. 여담[편집]
- 창가학회의 독실한 신도이다.
- 2017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시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내에 있는 한국인[4]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찾아 헌화했는데, 일본 주요 정당 대표가 한국인 위령비를 공식 방문해 헌화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 변호사 시험 합격 당시 동기로 전 자유민주당 총재인 다니가키 사다카즈가 있었다.
6.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08 11:10:26에 나무위키 야마구치 나쓰오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